아래의 간단한 질문에 답해보자.
1. 다음 중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A) 1년 후에 사과 1개 받기
(B) 1년이 지나고 바로 다음날 사과 2개 받기
질문이 다소 이상하지만 일단 답해보자. 그리고 아래의 질문에도 답해보자.
2. 다음 중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A) 오늘 사과 1개 받기
(B) 내일 사과 2개 받기
위의 질문은 사실상 같다. 하루를 더 기다려 사과를 2개 받을 것인가? 아닌가?
단지 1년이라는 시차만 있을뿐 하루를 더 기다릴 용의가 있는지를 묻고 있다.
경제학자 리처드 탈러('넛지'의 저자)는 위의 간단한 질문으로 경제학에 혁명을 일으켰다.
위의 질문은 사소해 보이지만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을 주는 질문이다.
탈러가 주목한 것은 사람들이 일관성이 결여된 대답을 했다는 점이다.
1번 질문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B를 택할 것이다. 하루만 더 기다리면
이익이 두배가 되는데 기다리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1번 질문에서 B를 택한 사람들의 대다수가 2번 질문에서는 A를 선택했다.
1년이라는 시차를 둔 질문에서는 인내심을 발휘했던 사람들이
짧은 시차를 두자 인내심을 잃고 다른 선택을 한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은 '현재'에 중독되어 있다.
똑같은 가치를 지닌 일이라도 미래보다는 현재의 가치를 훨~씬
크게 느낀다는 것이다. 즉 인간은 모든 면에서 합리적이고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미래와 현재의 가치를 느끼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비합리적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은 인간의 이러한 본성을 '과도한 가치폄하 효과'라는
전문용어로 설명한다. 간단히 말하면 인간은 눈앞에 당장 닥친 일에 대해서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가치를 과도하게 폄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눈앞에
있는 사과를 하루만 기다리면 2개를 받을 수 있는대도 지금 당장 1개를 받는 것이
가치가 크다고 느끼는 것이다.
'현재'의 가치를 '미래'보다 지나칠 정도로 크게 인식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종은 99%의 시간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살아왔다.
우리가 지금의 모습을 갖추고 살아온 시간은 인간 역사의 1%도 되지 않는다.
즉, 인간의 몸과 마음은 아프리카 사바나 시절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최근 진화심리학으로 인간의 비이성과 원시논리에 대해 분석한
'양복을 입은 원시인'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그 책이 제목이 지금의
우리를 정확하게 묘사한 것 같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살던 시절을 상상해보자. 그 당시에는 매일 사냥과 채집을 해서
먹고 살았을 것이다. 오늘 사냥에 실패하면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잠들어야 했을 것이고,
매일 매일이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지금 당장 먹을 수 있고 내 손안에 있는 것이 가장 큰 가치를 지녔을 것이고
미래의 불확실한 이득에 대해서는 가치를 거의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시대에는 과거와 다르게 모든 것이 풍족하다. 하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구석기 시대에 맞춰져 있기에 지금도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의 이득보다는 지금 당장
나에게 이득이 되는 것에 큰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왜 우리가 미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현재의 달콤한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노력하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지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이다.
미래의 날씬한 몸매를 위해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는 것,
미래의 불확실한 성공을 위해 지금 당장 달콤한 잠을 줄이는 것 등등......
이것은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기에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엄청난 의지와 노력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의 본성을 이겨낸 예외일 뿐이다. 예외가 규칙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성공 신화 때문에 우리는 인간에 대한 잘못된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당근과 채찍'의 저자인 이언 에어즈 교수는 우리에게 '약속 실천 계약'이라는
이론과 도구를 제안한다. 일종의 자기 결박성 약속인 '약속 실천 계약'의
개념은 간단하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으며 때때로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세이렌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아름다운 인간 여성의 얼굴에 독수리의 몸을 가진
전설의 동물이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노래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바다에 뛰어들어
죽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세이렌의 노래소리는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어서
수많은 선원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오뒤세우스는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하여 부하들에게 자신의 몸을 돛대에
결박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의 결박을 풀지 말라고 했다. 세이렌의 고혹적인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오뒤세우스는 결박을 풀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귀마개를 쓴 부하들은 명령에 순종하여 그를 더욱 단단히 결박하였다. 결국 선박의
항해는 계속되었고 노랫소리는 점점 약해져서 마침내 세이렌의 유혹으로부터 무사히 벗어나
섬을 지나갈 수 있었다. 이에 세이렌들은 모욕감을 느껴 단체로 자살했다고 한다.
오뒤세우스는 현명했다. 다른 이들처럼 자신의 의지를 과신하여 목숨을 잃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돛대에 묶어버렸다. 처음부터 선택의 여지를
차단해버린 것이다.
약속 실천 계약은 오뒤세우스처럼 자기 자신을 돛대에 묶어 버리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과대평가하지 않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보완하기 위해 자기 결박성
약속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이 언제까지 살을 몇 킬로그램 빼겠다고
다른 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만약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상당히 큰 액수의
돈을 누군가에게 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약속 실천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 자기 자신, 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를 과대평가하기 보다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 인간의 본성은 미래의 불확실한 성공, 꿈을 위해 현재의 달콤함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 본성을 이겨내는 것은 자기 자신만의 의지만으로는 (소수의 강인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면) 참으로 힘든 일이다.
(약속 실천 계약의 자세한 내용은 '당근과 채찍'을 참고하세요. 쓰다보니 서두가 너무 길어서 지쳤어~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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